나는 게임 개발자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것은 이제 고작 3년 남짓 한 시간이 흘렀다. ‘게임 개발자의 육아 로망은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농담이 현실이 된 것도 딱 저정도의 시간이다.
나는 개발자이자 아버지로써 하나의 소박한(?) 욕심이 있다. 앞으로 2~3년 뒤, 두 아이가 더 자랐을 때,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며 같이 즐기는 것-사실 올해(2012년) 초에 열렸던 글로벌 게임 잼 서울(Global Game Jam Seoul: 관련기사 –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41913) 행사에 게임 제작은 커녕 게임이라곤 생판 모르는 아내와 함께 참석을 하고 싶었었다. 이틀이나 그 곳에 묶여 있으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도 없거니와, 기타 다른 가족 행사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나는 내 일에 대해서 그만큼 자부심이 있고, 내가 자부심을 가진 일에 대해서 아내가 좀 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두 아이와 함께 게임을 만들고 싶은 욕망은 사실 피그-민(pig-min)의 ‘[시시즈 매지컬 포니콘 어드벤쳐(Sissy’s Magical Ponycorn Adventure)] (2011) <플래시게임>‘ 포스팅에 기인했다. 자신이 게임 개발자이고 이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면 이러한 욕망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대한민국에서는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아직 이 나라에서의 게임 문화 수준은 아직 내 스스로도 단순한 소비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충격도 있었다. 어쨌든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고 같이 플레이 한다는 것은 게임 제작자로써도 아버지로써도 건전한 희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2012년 2월 6일 부로 이른바 ‘초-중등학생의 인터넷게임중독 예방 및 해소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이 법은 이른바 학교 폭력의 원인이라 지목된 게임(이 부분의 논리적 합리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에 대한 규제를 위한 법안이다. 이 법안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존재한다.
제11조(시험용 게임물의 제공 금지) (1) 누구든지 게임물 개발 과정에서 해당 게임물의 성능, 안전성, 이용자만족도 등을 평가하기 위하여 제공하는 시험용 게임물을 학생에게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16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 제 11조를 위반하여 시험용 게임물을 학생에 제공한자.
즉 이 법안이 통과 될 경우, 게임 개발자이며 아버지인 내가(누구든지), 아이들과 즐길 게임(게임물)을 제작하고 그것을 단지 내 아이들과 함께 플레이 할 경우 나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이건 온라인 게임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라고 이야기 할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지면, 해당 법안에는 ‘게임물’ 및 ‘시험용 게임물’에 대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으며, 기존 법령의 ‘인터넷게임물’의 범위 역시 모호하게 적용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기존 법률은 콘솔과 스마트폰 게임, 심지어 스타크래프트가 인터넷게임물인지 조차 분류해내지 못한다). 법률은 적용 때 엄격하게 그 객관적인 의미로 적용하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나의 소박한 꿈 역시 실행 할 경우 1법률 위반 행위가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6세가 되기 전까지는 아이들과 같이 게임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그렇게 문제이며 사회악인 게임이 왜 6세 미만은 괜찮은 건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법률이 입법 되기 까지의 학교 폭력-게임의 연관성에 대한 논리적인 오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법은 건전하게 게임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 까지 범죄자로 만든다. 어차피 게임 개발자이면서 아버지 – 어머니인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겠어? 라고 법을 밀어붙인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없다. 하지만 기억하라, 지금의 학교 폭력도 결국 소수자에 대한 무관심과 폭력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란 것을. 결국 일진이나 이런 법안을 발의하는 사람들이나 불법적인 폭력인가 정당한 폭력인가의 차이일 뿐 결국 본질은 똑같은 문제다.
마지막으로
이 법안을 발의한 10명의 의원들은 게임 개발자이며 아버지인 내가 나의 아이들과 공감하려고 하는 기회 하나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빼앗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