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전역한 직후, 운 좋게 게임 회사에 취직하고, 취직 하자마자 일본에 약 한달 정도 파견 근무를 다녀온지도 벌써 두어달이 지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 저것 커다란 이벤트들이 많았던 2008년의 전반기도 이제는 약 15일 정도 남아 있는 것 같군요.
일본에서는 회사의 사업부 전략 수립 문제-라고 해 봐야 사실 옆에서 자료 챙기고 회의록 작성한 것 밖에는 없지만-로 골머리를 썩혔습니다만, 덕분에 일본의 IT, 주로 인터넷 서비스와 관련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었습니다. 게다가 같이 갔던 프로그래머들은 불철주야 서비스 런칭 때문에 정신 없었을 때 저는 주말이면 느긋하게 혼자서 도쿄 시내를 거닐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죠. 뭐, 여기까진 그냥 자랑입니다. 🙂
하지만 결혼 문제로 한국에 돌아오고, 전략팀에서 게임 개발-정확히는 기획-부서로 배속 받은 다음부터는 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미 개발중인 프로젝트의 중간에 참여를 하는 문제에, 일본에서 부터 내려받은 업무를 처리하랴, 결혼 준비 마무리 하랴 난리도 아니었죠. 즉 세개의 프로젝트(결혼을 포함)를 동시에 나가고 있었는데, 일의 일정 상 셋 다 우선 순위를 결정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는 엉망, 하나는 보통,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그나마 성공-결혼 말입니다-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편히 쉬고 돌아온 회사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회사 내에서 어차피 신입으로 인정받고 있는 와중-경력으로 보면 신입이나 별 반 없었으니까 상관은 없습니다만-이었기 때문에 사태를 조금 관망을 하다보니 문제는 쉽게 발견 되었습니다. 끝나기로 하는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은 상태로 새로운 프로젝트가 발주되어 들어오고 있었고, 때문에 절대적으로 프로젝트에 집중 할 환경이 안되었고, 전체 팀원들이 두 세개의 프로젝트에 걸쳐서 일을 하다 보니-심지어는 프로젝트 팀장까지도-책임감은 자연스럽게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항에서 아무도 의사 결정을 하려 들지도 않았고, 경영진의 조급함 까지 겹쳐서 쓸데없는 일들이 추가가 되는 말도 안되는 일 까지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팀원간의 업무 커뮤니케이션은 0라고 판단해도 무방할 정도로 공유가되질 않았죠. 그리고 그게 현재까지 오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요즘은 (다행이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습니다.
더욱 더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은, 회사 경영을 위해서 이것 저것 프로젝트를 발주 받아 온 것 까지는 좋은데, 어떻게든 상황을 컨트롤 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프로세스 관리는 엉망이었습니다. 일정은 전체 일정은 공유되지 않고 있고, 각 담당자들은 지시 받은 일 들만 하고 있었으며, 프로젝트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조차 파악 할 엄두조차 내기 힘들었습니다. 프로젝트 총 책임자 마저도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왔는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마일스톤 따위는 기대 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이슈 추적은 커녕 버전 관리도 안되어서 온 팀원들이 회사 전 네트워크를 해집어 놓은 적도 있었죠.
상황은 복잡하고 가장 않좋은 방향으로 치우쳐있지만, 해법들이 없는건 분명 아닐겁니다. 그나마 희망은, 경영진 쪽에서도 당장의 커다란 문제였던 중복되고 여러사람들에게 엷게 걸쳐있는 프로젝트는 다행이도 조직 개편을 통해 개선을 한다고 한다는 것이었죠. 음… 그런데 개발 프로세스는요? 커뮤니케이션 개선은요? 총 책임자 하드디스크에서만 잠들고 있는 스케쥴 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것 아닙니까? 조직 개편을 한다고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잖아요?
미친듯이 복잡한 상황에서 거창하게 ‘애자일 방법론’ 같은 것을 들이밀고 싶지는 않습니다만-구성원들이 미친듯이 바쁠때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따위를 하면 어떤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군대에서 충분히 경험했습니다-그래도 당장에 시급한 몇가지들(버전 관리, 이슈 추적)을 먼저 나서서 해결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비슷한 업종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하고, 책도 읽고, 소프트웨어들도 직접 사용해보고 있습니다. 덕분에 명쾌하지는 않아도 어느정도 정리된 목표도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입 주제에 너무 건방지게 나대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