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 : CAPCOM
- 유통 : 코코캡콤 (한국 발매판)
- 장르 : 롤플레잉
- 리뷰 타이틀 버전 : Play Station 2 한국 발매판(2004.03.18 – NTSC/J)
이 세상에 살 수 밖에 없다고 해도
일본 TV CM 중
이대로 사는 것이 편하다 해도
이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모르는 것이 행복하다 할지라도
비록 이 세상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니나… 하늘로 가자
이른바 영화계에서는 속편의 법칙 같은것이 존재한다. 1편이 성공한 영화에 빗대어서 후속편의 징크스가 어떻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해대는 논리가 게임계에도 적용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하곤 하지만, 이른바 명작의 반열에 들어간 시리즈는 영화판과는 다르게 그 명성을 이어가면서 5편 6편, 심지어는 12편까지 속편이 제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영화와는 다르게 ‘차마 브랜드를 버리자니 그 이득이 만만치않기 때문에 브랜드를 유지하되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해 보자’라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이는 결과론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던가 또는 기존의 팬들마저 외면하는 극단적인 결과를 불러오곤 했다. 지금 리뷰를 적는 브레스 오브 파이어 V – 드래곤 쿼터(이하 드래곤 쿼터)의 경우도 이런식의 브랜드 유지 전략을 사용했다고 들었지만(일례로 패키지의 세로 타이틀에서 굵은 글씨로 강조된 것은 브레스 오브 파이어가 아닌 드개론 쿼터다), 사실상 전작을 한편도 플레이 해 보지 못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논쟁은 별문제. 그것보다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하늘을 만나러 가자…
드래곤 쿼터의 배경은 인류가 어떤 계기로 지상이 아닌 지하에 거주하기 시작한 이후 지상의 존재가 공포로 변한 시대의 이야기이다. 게임의 시작은 지하 1,000m 부터 시작을 하기 때문에 게임의 대부분은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실내 공간을 묘사하고 있다. 필드에서의 운신 폭은 대단히 협소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꽤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답답함은 시스템 디자인상의 특성과 결부되어 게이머에게 커다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드래곤 쿼터의 게임 시스템 중 가장 특징적인 요소중 하나인 D-카운터가 바로 게이머의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대표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데 이 D-카운터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증가하며, 백분율로 표시되어 카운터가 100%에 도달할 경우 주인공의 내부의 드래곤이 각성하며 게임 오버가 되는 시스템이다-일종의 시한 폭탄을 생각하면 될 듯. 평소에 이동을 하거나 시간을 보낼때 증가하는 폭은 극히 미미한 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엔딩을 볼 때 까지 100%가 될 일은 없는 편이긴 하지만, 문제는 이른바 드래곤의 능력을 주인공이 사용할 경우가 게임 상에 자연스럽게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주인공이 쓸 수 있는 특수 기술 중에는 D-대쉬(필드상의 몬스터들과 인카운트 되지 않고 회피하는 기술)같은 경우, 기술 발동 고작 몇초 만에 수 퍼센트가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며, 사실상 드래곤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클리어하기 까다로운 보스들의 배치로 인해 게이머는 자연스럽게 마약과 같이 그 능력을 사용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이 충동을 극복하지 못하고 기술을 난무할 경우 난이도 하락과 동시에 게임 오버라는 공익광고스러운 결말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에 게이머는 지속적으로 D-카운터를 신경 써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마는 것이다.
D-카운터만이 아니더라도 게임의 초반은 상당히 힘들다,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에 한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광렙(…)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을 뿐더러, 게임의 세이브는 세이브 토큰을 소모해서만 가능하며, 그나마 세이브 역시 메모리 카드에 ID를 인식시켜 한 메모리 카드에 하나의 데이터만 저장 가능하며, 또한 로딩 즉시 이전 세이브 데이터는 삭제 되도록 설정을 해 두었기 때문에 이른바 리셋 노가다를 하기도 힘들다.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자신의 세이브 데이터라는 것은 어찌 보면 소유욕에 불타게 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 역시 게이머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여러가지로 만만한 게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 바로 드래곤 쿼터인 것이다.
반복 플레이가 당신에게 만족을 주고 있습니까?
초반, 그것도 1회차의 상당한 난이도를 극복하기 위해 게임에서는 Give Up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 게임 도중 기브업을 선택 할 경우 파티 경험치와 돈, 스킬, 장비중인 아이템 등이 다음 플레이에 전승되기 때문에 게임의 난이도를 상당히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브업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식과, 최종 세이브 부터 다시시작하는 두가지 방식으로 나뉘어 있는데, 사실상 도중부터 시작하는 경우에는 D-카운터 수치가 그대로 전승되기 때문에 D-카운터 관리 불찰로 인한 기브업의 경우에는 인정사정없이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필자는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네번이나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 했었다. 이른바 레벨 노가다를 하는 수고가 제한적인 대신 게임을 반복해서 해야 하는 수고로 전이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게임은 SOL(Scenario OverLay)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반복 플레이를 강요하고 있다. SOL 시스템이란 플레이를 반복함에 따라 이전 플레이에서 볼 수 없었던 이벤트나 스토리 전개가 등장하는 개념의 시스템으로 절대로 1회차 플레이 만으로는 게임의 세부적인 스토리를 파악하기 힘들도록 제작되어 있다. 때문에 최소 2회의 엔딩을 보는 수고를 감당해야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필자와 같이 반복 활동을 싫어하는 부류의 경우에는 이러한 반복플레이의 강제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기존의 비디오 게임들이 특전이니 숨겨진 요소 같은 것으로 게임을 구입한 게이머들이 본전 이상의 재미를 누릴 수 있게 장치를 한 것과는 이는 또 다른 의미이다. 반복 플레이시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무엇과 반복 플레이를 해야 제대로 된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 큰 차이인 것이다. 물론 분명히 반복 플레이로 재미를 얻는 하드코어 유저들도 존재하긴 하지만, 시장을 자꾸 하드코어 유저들에게 몰아간 결과가 현재의 게임 시장이라는 분석이 팽배한 마당에, 구태여 시리즈 타이틀 보다 부제를 더 강조해 가면서 새로움을 강조한 시리즈의 최신작에서 이러한 하드코어한 시스템에 올인 할 이유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니나… 하늘로 가자
어두운 배경, 빡빡한 시스템, 녹록치않은 난이도 등으로 이 게임이 라이트 유저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에 마지막까지 적응하지 못했을 경우의 이야기이다. 어두운 배경, 빡빡한 시스템, 녹록치않은 난이도는 제작사의 복선이자 반전이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깔끔하게 애니메이트 된 엔딩은 그만큼의 수고를 감내해 낸 게이머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이 어렵다는 것과 재미없다는 것 역시 의미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명확하게 표현을 하자면, 이 게임은 재미있지만, 그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력을 감내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해야 할 듯.
류와 니나, 그리고 린이 바라보게 된 하늘. 그 하늘을 같이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다지 헛된 노력은 아니기에 드래곤 쿼터의 가치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