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게임 시뮬레이터는 플레이어가 게임상 시상식의 심사위원장이 되어 후보작을 검토하고, 다양한 분야에 포진해 있는 심사위원의 의견을 참고하여 수상작을 선정하는 게임이다. 해당 게임은 2020년 3월 17일 무료 공개 되었다.
이 게임에 대한 정보확인 및 다운로드는 이곳에서 가능하다.
프로젝트 소개
- 제작기간: 2020. 01. 22. – 2020.03.17. (약 2개월)
- 사용 게임 엔진: Unity (2019.2.19)
- 개발 플랫폼: Windows 10
- 제작 인원: 1명
좀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대한민국 게임 대상은 리갈 던전에 대상을 줄 준비가 되었을까?
개인 SNS 포스팅, 2020. 01. 10.
2020년 1월, 아직 코로나 19가 국내에선 해외의 이야기이기만 했던 때. 단연 대중의 관심은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여부에 쏠려 있었다. 물론 모두들 알다시피, 기생충은 몇 주 후 주요 부분 4관왕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고, 곧 이어 터진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금방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당시 기생충의 선전을 보면서 들었던 의문은 그럼 우리나라 게임은 어떤가? 우리나라에서 게임상이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위치에 있는가? 였다. 나름 여러 게임 시상식, 게임 지원 사업 등의 피평가자 였었고, 반대로 평가를 하는 위치에도 서 봤기 때문에 내부의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부의 사정을 이해해주기에는 국내 대부분의 게임상, 게임 지원 사업들이 게임의 문화/예술 측면 보다는 사업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현실은 전부터 의문이었다. 진짜로 그렇게 밖에 안될까? 같은.
우리는 얼마나 게임을, 게임 제작자를, 게이머를 존중하는가?
올해의 게임 시뮬레이터, 캐치프라이즈
게임의 캐치프라이즈는 프로젝트 시작 때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개발 도중 게임계에 터진 여러 사건들 – 게임법 개정안 문제, 게임위의 고전 게임 사이트 폐쇄 조치, 인디 게임 표절 문제, 반쪽 조치가 된 다중 플랫폼 게임 심의 면제 문제, 게임계 노동권과 인권, 성차별 문제 등 – 을 바라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게임상은 그저 결과일 뿐인거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WHO의 게임 중독 질병 등재 이후 게임은 문화다 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 스스로 게임, 게임 제작자, 게이머를 존중하고 있었을까?
프로젝트 목표 – 게임의 의도
원래는 위 생각을 정리해서 장문의 블로그 글을 쓰고 끝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것을 시리어스 게임으로 만들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마음을 고쳐먹은 가장 큰 이유는, 최근 게임 디자인에 대한 가장 큰 고민인 게임의 경험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을 한번 스스로 구현해보고 싶었던 것. 최근 저니, 데스 스트랜딩, 타이탄 폴 2 등의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느낀 감정들의 영향이 매우 컸다.
이벤트 컷신이 아닌 게임 플레이 자체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은 그간 내가 스스로도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이라 이에 대한 시험 성격이 짙다. 생각만큼 잘 되었는지는 조금 의문이긴 하지만.
이를 위해 가상의 심사 시스템을 구현하고, 이를 조작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국내외의 게임 관련 심사는 이런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즉, 시뮬레이터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현실을 구현하지 않았다. 게임에 구현된 가상 시스템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위해(그리고 게임 편의성을 위해) 전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 그래도 심사 시스템의 모티브 자체는 IGF Independent Games Festival 의 심사 시스템에서 따왔다.
게임의 목적인 체험을 통한 이야기 전달을 위한 많은 고민들을 했었는데, 처음에 전체 게임 정보를 보여주지 않고, 시스템 기능을 제한한 이유가 여기 있다. 플레이어들이 실제 심사위원들 처럼 게임 정보를 세세히 확인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최종 게임을 선정하길 바랬다. 한꺼번에 많은 텍스트를 주면 보통은 그 텍스트를 귀찮아하고 스킵하게 되는데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때문에 플레이 시간과 플레이어의 행동(글을 읽고 확인 하는)을 체크 해 정보가 하나 하나 풀리고, 기능이 추가되는 점진적인 구성을 도입했다.
그밖에 소소하지만, 작은 고민들도 게임에 포함시키려 노력했다. 이를테면, 게임상은 무조건 수상작이 선정 되어야 하는데, 게임상 자체의 경직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심사위원들의 성격 역시 마찬가지. 각 기관 별 메시지의 표현 방식은 물론, 모 정부 기관의 강압적인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 기관이 보내는 메시지는 무조건 전체 팝업을 띄워 플레이어 시야를 가리게 만든다던가. 남들은 잘 안쓰는 볼드 bold 나 붉은색 폰트를 쓰는 등의 디테일을 추가했다. 후보작 업데이트 같은 자주 나오는 공지는 로고 이미지를 뺌으로써 심사위원회가 좀 엉성하고 급박하게 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수상작 선정에 따른 멀티 엔딩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엔딩이 암울한 것은 의도에 따른 것이다. 노골적인 게임 오버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정식 엔딩인데 대부분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오도록 구성했다. 플레이어가 판단하고 선택한 것에 대해 어쨌든 최대한 생각해 볼 여지를 주고 싶었다.
현실적인 문제
10년 넘게 업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력은 게임 디자인과 PM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 게임을 만들어본 경험은 거의 없다. 때문에 백수로 시간이 남아도는 이 때 겸사겸사 혼자 게임 만드는 역량을 키워보자는 식으로 유니티 엔진을 학습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막간 광고 – 게임 디자인, PM 부분 인력 충원 중이신 분들 있으시면 연락 주시면 이력서 보내드립니다).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일정 예측이 매우 안되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개발 초기 예상한 개발 시간은 2주 정도였는데, 개발 도중 코딩 부분에서 초보자가 겪는 온갖 문제가 다 터져나왔다. 추가 개발 기간인 6주 중 4주는 기능 구현하면서 레퍼런스 찾고 그걸 이해하는 시간에 오롯이 다 쓰였다.
당연히 초보 코더에게 설계 같은게 있을리 만무하므로 스파게티 코드는 아에 당연시 했다. 덕분에, 기능 하나 구현하고 다른 기능 구현 할 때 마다 기존 코드를 다시 다 엎어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 이건 프로젝트 막판 까지도 계속 문제가 되었다.
오늘의 유니티 교훈.
개인 SNS 포스팅, 2020. 02. 03.
기획적 변경 사항은 프로그래머에게 짜증을 유발한다. 를 인지하고 있는 것과 직접 체감하는 것 사이에 넓디 넓은 간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게임에 쓰인 로고, 이미지, 그리고 사운드 리소스 등은 주로 구글 검색을 통해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려있는 이미지를 가져다 사용했다. 음악의 경우, 작곡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만들긴 했는데, 사실 1, 2개의 루프 음원을 조합한 수준의 아주 조악한 결과물이다 – 덕분에 음악 On/Off 기능을 꽤 빨리 만들긴 했다.
잘 된 점 / 잘못 된 점
잘 된 점
- 유니티 학습은 제대로 된 듯 하다. 2D 게임은 혼자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버전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게임 데이터를 스프레드시트로 관리하는 것을 처음부터 고려한 점. 버전 관리 시스템은 유행을 따르기 보다는 혼자 쓰기 편한 것을 골랐는데 유니티 내장 버전 관리 시스템이 그런 면에서 쓰기 좋았다.
- 프로젝트 초기 비전을 끝까지 유지한 점. 개인 프로젝트였음에도 문서 하나를 만들어 비전을 계속 관리했고, 프로젝트 진행 방향과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게 없었으면 또 삽질 했겠지.
- 한계와 목표를 정확하게 긋고 모든 가치 판단을 이를 기준으로 함. 게임의 세부적인 퀄리티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까지만 한다. 를 밀어 붙인 것.
- 게임 트레일러 – 원래는 스크린 샷 몇 장 대충 때우려 했는데, 품질은 둘째치고 일단 만들기는 잘 했다는 생각. 사람들의 관심 끌기 좋았던 것 같다.
잘못 된 점
- 학습 필요량 예상 실패. 이건 초보자의 무모함이라고 치자. (응?)
- 텍스트 검수 과정의 문제 – 최대한 맞춤법, 오타를 잡아내려고 했지만, 수동으로 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습작이니까. 라며 넘겼는데 역시나 여기저기 문제가 터졌다. 나중에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맞춤법 검사 기능이 있는 걸 확인하고 많이 잡아내긴 했는데, 이 기능으로도 검출 안되는 게 좀 있어서 대안이 필요한 상황.
[…] 굳이 또 이야기 하지 않겠다. 내 스스로는 꼭 조직에서의 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포스트모템을 하는데, 정식적인 포스트모템이 아니더라도 꼭 일이 끝난 후 그 일에 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