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검토: P 프로젝트 2008 (2)

커뮤니케이션 – 기획, 프로그래밍, 그래픽 

2008년 5월경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을 때 내가 맡은 부분은 기획 보조였다. 사내 제작 회의는 물론 발주사와의 미팅에도 꼬박 꼬박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직급상 나의 상관이었던 기획 팀장(겸 PM)을 포함하여 어떤 누구도 프로젝트에 대해서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주로 문서화 작업과 기타 잡다한 설정 작업-주로 아이템 등-을 작업을 했기 때문에 메인 기획자의 의견은 ‘존중해야 할 것’이 아닌 ‘확실하게 이해하고 명확하게 작업해야 할 것’이었지만, 항상 뭉뚱그려진 작업 지시와 시스템 디자인들만 쏟아졌다. 사실 프로젝트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만들어야 되는지 PM조차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작업 지시가 나올리가 만무했다.

기획 초기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커뮤니케이션의 혼돈이 따로 없었다. 발주사 측의 PD는 순간 순간 나오는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급급했고, 정작 중요한 전체 서비스 개요에 대한 설명은 뭉뚱그리거나 농담으로 매꾸곤 했기 때문에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개인적으로 프로젝트 의도를 2008년 12월 초나 되어서야 겨우 알아차렸다). 또한 프로젝트 초반을 담당했던 PM은 웹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개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게임 개발에 쓰이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역력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내의 웹 개발팀의 조언은 필수적이었지만, 시의적절한 인력 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프로젝트에 대하여 이해도 없이 내던지는 여러 사람들-대표 이사로 부터 시작해서 각 실장, 팀장들-의 의견은 결과적으로 프로젝트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PM은 이런 잡음들을 묵살 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 없었다(때문에 내가 프로젝트에 참여한지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 지나서 PM은 회사를 퇴사해 버렸다).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에 혼란만 쌓여가면서 시간은 낭비되어갔고, 프로젝트에 실질적인 개발 인력(새로운 PM을 포함하여)은 계약 시 설정했던 기한을 1달 반 정도 남겨둔 6월 중순에나 배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력이 배치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된 것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하여 기획팀은 Flash 기반의 게임 개발은 대부분 처음 또는 두번째였다. 플랫폼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내의 테크니컬 디렉터나 아트 디렉터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그러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게임 개발의 경험이 전무하였고, 적절한 어시스트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게다가 이들은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데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라 시키는 일을 처리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장님 코끼리 만지 듯 기획은 러프하고 엉성하게 짜여질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늠도 없었고, 완성된 프로젝트의 모습을 명확하게 그리기도 힘든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명확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외부의 변수나 의견에 의해서 프로젝트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고, 결정 사항들이 번복되는 상황이 자주 반복되었다.

기획의 문제

게임과 SNS를 결합한다는 이야기는 모든 상황을 최대한 단순화시킨 목표이긴 하지만, 그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기획 단계에서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SNS에서 이뤄지는 활동 자체를 게임화 시키자는 것이었고, 때문에 친구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친구와의 친밀도가 높아 질 수록 자신의 경험치가 쌓이고 레벨이 올라간다는 기괴한 시스템이 붙어버렸다.

사실 소셜 네트워크(SN: Social Network)는 그 진행을 강제 하거나 조작 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활동이나, 게임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간과한 것은 초기 기획의 가장 큰 실수였다. 서비스는 게임으로써는 재미가 없었고, SNS로써는 쓸데없는 기능만 붙어 있는 쓰레기가 되어버린 건 당연했다. 사실 기획이 어느정도 진행 된 이후 게임으로써 재미가 없다는 의견이 나왔고, 나에게 그 해결책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을 때 게임 시스템과 커뮤니티 기능을 분리하여 생각할 것을 주장했지만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그냥 묻혀버린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이 프로젝트에서 게임 형태로 붙어있는 시스템이라고는 요정 육성 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형태는 대단히 단순하기만 하다. 요정과 플레이어간에 설정된 친밀도가 설정되어 있으며, 이는 요정과의 대화 또는 선물하기 등으로 해당 수치가 상승하며 일정 기간 대화가 없을 경우 친밀도 수치가 하락하게 된다. 수치는 매일 1회 평가를 거쳐 소정의 게임 포인트와 경험치를 얻도록 되어 있다. 육성에 해당하는 대화는 3가지 선택 문항(긍정, 중립, 부정)에 따라서 요정의 친밀도가 변화하는 형태이다.

요정 육성의 핵심은 대화 시스템이지만, 요정의 종류나 성격에 관계 없이 대화는 천편일률적이고 반복적이기 때문에, 요정과의 대화에 흥미를 오래 가질 만한 요소는 없다. 랜덤하게 출력되는 질문과 대답의 양을 무한정 늘려 오픈하긴 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출력되는 텍스트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본질적으로 재미 없다는 것에 있었다.

정말 쓸모가 없이 덧붙여진 시스템도 있었다. 플레이어의 레벨이 성장함에 따라서 총 7번의 등급이 올라가게 되는데, 등급이 오를 때 마다 ‘동사무소’라는 장소에서 ‘이사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이사를 하게 됨으로써 얻는 이득이라고 하는 것은 쓸데없이 넓은 꾸미기 공간이 추가 되고, 자신의 꾸미기 공간의 배경이 변경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이러한 공간 이동을 등급 상승과 동시에 자동으로 처리해도 별 다른 문제점은 없었지만, 단지 초기 기획에 있었다는 이유로 별 다른 고려 없이 그대로 남게 되었다-사실 동사무소가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각 마을의 등급 구분이 없이, 자신이 원하는 형태(전원, 도시, 미래 등)의 마을을 자유롭게 이사 다닐 수 있어야 했다.
근본적인 문제들쓸모없는 기능들과 불편한 기능들로 인하여 무가치한 경험을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어쩌면 초기 기획단계에서 부터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아무도 서비스의 최종 결과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가장 큰 문제로 작용했다. 서비스는 여러 재미있어보이는 아이디어들의 짬뽕이 되었고, 각 기능간에 연관성도 목적도 없이 그냥 거기에 이유도 없이 존재할 뿐이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조율하려 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았다.

현재의 런칭 버전에서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게시판에 친구를 찾는다는 글을 남겨두고 아무런 쓸모 없는 친구들의 수를 무한정 늘리거나, 다른 서비스에서 취득한 게임 포인트(이는 포털 업체의 전체 빌링 시스템과 연동 되어 있다)를 이용하여 자신의 꾸미기 영역(집과 정원)에 자원을 낭비하는 것 뿐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재미요소도, 또한 SNS로써의 가치 창출이 될 만한 기능도 없다(가치 창출은 커녕 자신이 오프라인 상에서 알고 지내는 친구와 직접 친구 관계를 설정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친구가 아니면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없는 상식 이하의 제한이 걸려있다). 이후 2009년 1월 중에 ‘여행지’라고 하는 가상 세계(Virtula World)가 붙게 될 예정이지만, 여전히 서비스와 전략적으로 매칭이 되는 요소는 없고, 그저 생뚱맞기만 할 뿐이다.

내가 어느정도의 기획 능력을 갖추고 팀 내에서 PM의 위치에 있었어도 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사실 (여러의미로)열악한 환경에서 프로젝트를 잘 이끌어나갈 자신은 여전히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문제점을 일찍 발견하고,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서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갔다면 프로젝트가 방만한게 완료되는 상황은 조금은 비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목표를 명확하게 세우고 그 목표에 부합한 시스템을 설계 하기 위해 노력 한다면, 항상 최종적으로 만들어질 서비스의 결과에 대해서 생각하며 사용자의 경험을 우선 시 한다면, 이러한 결과를 내 놓는 일은 아마 두번 다시는 없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