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검토: Project SDO

올해(2009년) 1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난 회사에서 퇴사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게임 업체에 취업하게 되었다. 회사는 중소규모의 개발사였으며, 지금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첫 작품이 될 터였다. 다만, 모 퍼블리싱 회사와 협력사 관계로 있었기 때문에, 입사 시점에는 회사에 대해서 크게 걱정을 하질 않았었다(이것이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는것은 고작 4개월 후 다른 팀원들과 함께 해고 당하면서 알게 되었다).

Project SDO는 온라인 농구 게임으로, 특이 할 만한 사항으로 유명 해외 IP에 대한 원작 사용 계약을 맺어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내가 프로젝트 팀에 합류 했을 당시, 이미 프로젝트는 일정 상 중반을 넘기고 있었고, 대부분의 기획은 어느정도 틀을 잡아놓은 상태에서 그에 대한 구현에 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담당하게 된 업무는, 주로 게임에서 쓰이게 될 튜토리얼 기획, 퀘스트 시스템 디자인 및 기획, 그리고 싱글 플레이와 관련한 시스템 및 구성 기획이었다. 몇 번의 삽질과, 절충 속에 최종 기획안에 대한 정리는 완료가 되었지만, 얼마 전 회사에서 대대적인 정리 해고의 바람에 휩쓸리는 바람에, 그 폭풍에 휩쓸리는 바람에 결국 구현되는 시스템을 보지도 못한 채 회사를 관둬야만 했다.

프로젝트 참여

해당 프로젝트는 작년(2008 년) 5월경 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진행 되었다고 한다. 2009년 2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약 10여개월이 지난 상태였지만, 아직 기본적인 게임이 구현도 되질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장기간 지속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하지만, 처음 프로젝트 일정표를 받아보고 당혹스러웠는데, 입사일 기준으로 클로즈 베타 버전 릴리즈까지 기간이 고작 반년도 안 남았었기 때문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기획이었는데, 기획은 지나치게 기능 중심적이었고, 많은 것을 담으려고 애쓴 흔적은 역력했지만, 반대로 사용성이라던가, 재미 부분에 있어서는 물음 부호가 남을 수 밖에 없는 형태였다. 사실 모든것이 미심쩍은 상태였지만, 원작자와의 정식 계약을 통하여 진행하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프로젝트 존패 여부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게다가 상관으로 모신 기획 팀장님의 업무 스타일이 자신이 모든것을 책임지고, 팀원들은 맡은 파트 업무에만 전념 할 수 있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서 그다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점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젝트가 순풍에 돛을 단 배 처럼 순항을 했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프로젝트 계획은 아마도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험 요소: 계획

1년도 채 안되는 기간내에 게임을 만들어 출시한다는 것은 그럴수도 있다고 치더라도, Project SDO는 기획에서도 무리가 많은 프로젝트였다. 현재까지 나온 모든 농구 게임들의 특성을 하나의 게임에서 구현하려고 시도했던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JCE의 ‘프리 스타일’, EA Sports와 2K Sports의 NBA Live 시리즈 및 NBA 2Kx 시리즈, 그리고 EA Sports와 네오위즈 게임즈의 ‘NBA Street Online’의 특성을 모두 아울러 모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시도는 비록 말만으로는 근사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도 저도 안되는 ‘프랑켄슈타인 기획’이 되어버리는 불상사를 가져왔다.

내가 프로젝트에 참여 했을 당시 이미 이러한 어찌보면 무모한 기획은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덕분에 처음 기획 문서를 검토하면서 게임에 대해 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안될 복잡한 시스템들이 디자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용자는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무엇을 해야 할 지 혼돈에 빠지기 딱 알맞았으며, 각 시스템을 구분짓기 위한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용어들이 문서 내에 판을 쳤다-선수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일반 선수, 프리미엄 선수, 대여 선수, 더미 선수로 구분되는 선수 분류만 봐도 게임 때려칠 사용자가 여럿 있었을 것이다.

게임 모드는 모든 농구 게임을 아우르기 위해 정말 다양하게 지원을 했다. 1:1 부터 5:5 까지 이르는 선수 구성 방식에서 부터, (원작에 기반한 만큼) 원작의 캐릭터를 사용한 농구 경기 모드, 팀을 구성하는 팀 모드, 캐릭터 1인만을 이용하는 단독 모드 등.  클로즈 베타 구현 목표였던 4개의 게임 모드 이외의 확장까지 고려한 게임 시스템을 구성하였고, 이는 필연적으로 게임 시스템이 결코 단순해지지 못할 형태의 것으로 변질되는데 가장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이러한 복잡도는 거의 비행 시뮬레이션에 근접했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되더라도, 아마 사용자들은 게임에 대하여 공부를 하다가 지쳐 관둘 것이 뻔했다.

이러한 프로젝트 복잡도에 비해서, 프로젝트 일정은 너무나 단순 명료했고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개발 기간이 말도 안되게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지적을 하거나 수정을 하려는 사람들이 없었던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신기할 정도다.

위험 요소: 원작에 거는 기대

유명 IP를 이용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당연히 원작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는 높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정신차려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비 현실적인 기획들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게 만들었다. 게임은 전체적으로 원작의 느낌이나 감성을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 잘 봐줘야 그냥 3류 농구 게임에 원작 캐릭터의 스킨을 입힌 것 같은 정도였다.

사실 유명 해외 IP라는 것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원작자의 검수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그래픽 팀-특히 원화 팀-의 스트레스가 상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기획 쪽에서는 핵심 시스템의 수정이나 추가, 삭제 요구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문제는 클레임을 거는 것이 원작자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원작자, 원작에 대한 국내 판권자, 퍼블리셔, 개발사의 첨예(?)한 이해 관계는 게임의 꼴사나운 시스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원작의 팬으로 프로젝트에 참여 했다가 결국 수동적인 노동 근로자의 행태를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이는 전반적인 회사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은 없고, 각자 맡은 일 이상의 책임을 떠 맡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관료주의 분위기가 흐르게 되었던 것이다.

위험 요소: 인력관리

2009년 5월 마지막 날은, 프로그램 팀장이 회사를 자진해서 관둔 날이다. 그리고 개발 이사 이하 그래픽 실장, 기획 팀장이 회사를 관두게 되었으며, 나를 포함한 팀원 7명이 회사로 부터 권고 사직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 어처구니 없게도 권고 사직이나 여타에 대한 이야기가 발표 당일까지도 없었다가, 급작스럽게 통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그것도 퇴근 시간을 한참 넘긴 시각에. 구성 인력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인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며, 때문에 인력 교체가 상당히 자주 있었다고 한다.

이번 인사를 통하여 기존에 프로젝트를 담당한 핵심 인력들(물론 나나, 입사 한달만에 나가게 된 몇 사람들은 제외하고)이 빠졌기 때문에, 솔직히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수행이 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완전히 초심으로 돌아가서 많은 것을 정리해 내면 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아마 안될꺼다.
여하튼, 인력 관리 부분에 있어서는 철학은 커녕 생각 자체가 없어보일 정도로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진 것만 보더라도 위험요소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안그래도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밀려있는 급여 때문에 사기가 꺾여있는 마당에 기습적인 정리 해고 통보는 겨우 살아 남아있는 사람들의 사기를 완전히 뭉게 놓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 뻔하고, 프로젝트에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상식이 있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정리, 그리고

해당 IP의 열열한 팬으로써 희망을 안고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고작 3개월 갓 넘긴 시점에 회사로 부터 정리를 당했던 심정은 괴롭다기 보다는 그냥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게다가 정리해고 대상이 된 이유가 단지 ‘기획 팀장’이 뽑은 사람은 못 미덥다는 이유였다고 하니… 이건 뭐…

이번 프로젝트에서의 교훈을 몇가지 정리하자면 ‘구현도 못할 기능은 쓸데없이 많이 넣지 말 것’, ‘경쟁자의 장점을 무조건 벤치마킹한다고 좋은건 아니다’, ‘인적 자원 관리는 항상 염두에 두자’일 듯 하다. 그리고 개인적인 교훈으로는 아무리 겉보기 번듯한 회사라도 쉽게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 정도?

#. 이제는 좀 제대로 된 사람들이랑 정말 제대로 일해보고 싶은게 소원이 되어버릴 정도. 어디 괜찮은 직장 좀 없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