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의사 결정 과정

얼마전 회사의 로컬 및 해외 마케팅 담당에게 해외 업체에서 메일이 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메일 전문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내용인 즉, 우리 회사의 명함과 데모 CD를 이번 지스타에서 받아보았으며, 혹시 아이폰 게임 제작에 관심이 없겠냐는 것.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회사의 윗분들은 그다지 생각도 안 해보고 ‘관심 있으니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보자’며 답장을 보낸 상태다. 회사의 입장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번달 전체 사원들의 급여는 일부만 지급되었다)에 다급한 입장은 납득할 만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벌써부터 아이폰/아이팟 터치 용 게임 어플을 제작하겠다고 단가 등을 타진하며 시끄럽게 굴고 있다.

그 난리를 옆에서 좀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자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인데, 현재의 회사 상황에 대해서는 단지 급하다는 점 이외에 개발 가능 여부나 MM의 투입, 필요 예산과 제작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무작정 ‘돈되는 일이면 한다’라는 주먹구구식의 의사 결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는 게임 제작이 주 분야가 아닌 웹 에이전시 및 출판 디자인이 전문인 회사였다. 게임 관련 사업부를 운영한것은 이제 1년 남짓으로 그나마의 전문 분야도 설치형 게임이 아닌 Adobe 사의 Flash와 Action Script를 위주로 한 Flash Game이 전문 분야이다. 즉, 게임 제작에 대한 경험도 아직 부족할 뿐더러, App SDK를 이용한 소프트웨어 제작은 회사 내 경험자가 단 한명도 없다-아니 애초에 Mac을 사용해 본 유저가 개발자 중에서는 전무하며, 유저 경험도 단 한명만이 아이팟 터치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개발 환경에 대해서 그닥 밝지 않은 사람들을 구성하여 해당 소프트웨어를 제작한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험 요소가 되겠지만, 사실 이것보다 더 많은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자금 사정에 여유가 없는 회사 사정은 이미 앞서 이야기 했으며, 이와 얽혀서 게임 제작 프로젝트는 벌써 1인당 할당 프로젝트가 4개를 넘어가고 있다(15명 남짓한 인원에 팀 전체 프로젝트는 약 10여개가 진행중이다). 스케쥴에 따른 우선순위에 맞춰서 투입 인력이 일주일마다 바뀌는 일도 예사이기 때문에 모 포털에 납품하려는 서비스는 그래픽 디자인이 일정치 않는다는 이유로 클레임과 런칭 일정 연기가 된 것도 벌써 네달이 다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문제들에 비하면 부서간 반목이나, 책임전가 등의 행태는 차라리 애들 장난 같은 일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경영진은 ‘돈만 맞으면 한다’라고 전략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기술 획득을 위한 전초전이라고 생각한다면야 그리 기분 나쁠 것도 없겠지만, 진짜로 별로인 것은 회사가 위급하니 독인지 사과인지도 가리지 않고 먹으려고 덤벼드는 행태이다. 현재 진행중인 다른 프로젝트와의 관계, MM 배치, 인력 구성, 보유 기술등을 고려한다면 저렇게 쉽사리 진행하자는 말이 단번에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어느정도 쉽게 나왔냐면 그 메일을 보자 마자 1초의 고민도 없이 단번에 대답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상으로 그 발주 업체는 아마도 우리 회사가 충분히 만족 할 만한 금액을 제시하진 않을 것이란 것 정도이다. 아니, 제발 어처구니 없는 가격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