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파리 – 이스탄불 여행 정리 – 이스탄불 편

나에게 이스탄불은 Plebby Quest: The Crusades 를 만들면서 일종의 버킷리스트처럼 언젠가 방문하고 싶은 도시 중 하나였다. 찬란한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3중 성벽, 십자군의 중간 기착지와 재앙과 같았던 제 4차 십자군의 침략, 거대한 사석포와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등.

이스탄불에 대한 로망은 이때부터

여기에 백종원의 튀르키예 음식 예찬까지 더해 이스탄불 여행에 대한 기대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스탄불 여행은 좋음과 나쁨이 반반씩 공존한 여행이었다.

첫째날(25.01.14.) 파리에서 이스탄불로

파리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출발한 시각은 파리 현지 시각으로 오전 7시 20분 경. 미리 예약해 둔 샌딩 서비스를 이용하여 매우 편하게 공항까지 도착하였다. 파리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항공편은 터키 항공을 이용하였는데, 대형기(보잉 777)가 운항하고 있었지만, 좌석은 꽉 찬 상태는 아니었다. 약 4시간 정도의 여정이라 기내식은 한 번 나왔는데, 이후 먹게 될 튀르키예 식사의 전초전 같은 느낌.

이스탄불 공항은 인천 공항의 세배 정도 규모의 공항이라는 이야길 보았는데, 역시나 규모 만큼이나 착륙 후 탑승 램프까지 이동하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입국장 까지 가는데도 꽤 걸어야만 도착하는 그런 규모. 크기에 집착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다 보니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이 약간 들었지만, 공항 자체는 새로 지은 공항 답게 매우 깔끔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이스탄불에서의 호텔까지의 이용은 호텔에서 제안한 픽업 및 샌딩 서비스를 이용했다. 픽업 드라이버 분은 영어는 통하진 않았지만, 항상 웃고, 활기차고 시끄럽게 이야기 하는 전형적인 튀르키예 노인이란 인상이라 첫 인상은 나쁘진 않았다. 다만, 이스탄불 역시 천년은 넘은 도시이다 보니, 언덕과 고저차가 있고, 길은 좁은데 수많은 차량과 트램, 그리고 사람이 얽혀있어서 파리보다도 “진짜로 여긴 부산이다” 같은 인상을 받았다.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본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이스탄불에서 묵었던 호텔은 Haci Bayram Hotel. 유럽 쪽 구도심 중 관광지인,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아야 소피아, 예레바탄 사라이 등이 도보로 10분 이내로 갈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트램 정거장이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호텔의 규모는 작은 편이나, 테라스에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바로 보였고, 파리의 숙소 만큼이나 청결 상태가 매우 좋은데다, 직원들 역시 친절했다.

호텔 체크인 후, 근처 식당에서 캐밥 등을 저녁으로 먹으며 이날 하루를 마무리. 구글 지도 리뷰에 현지인 맛집 정도로 쓰여진 곳이었는데 튀르키예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높여준 원흉이 된 곳이기도 하다(결국 일정 중에 여길 한 번 더 들리기도 했다). 서비스로 나온 바클라바 역시 맘에 들었다.

둘째날(25.01.15.) 아야 소피아, 톱카프 궁전, 카리예 박물관, 예레바탄 사라이

이스탄불의 날씨는 파리보다도 더 좋지 않았는데, 둘째날과 셋째날은 계속 가랑비가 오고 있었다. 당연히 날씨는 흐렸고, 위치가 위치인 만큼 바람도 꽤 불었는데, 덕분에 기온 상으로는 파리보다 조금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체감 온도는 더 낮았다.

이스탄불의 일정은 첫 시작부터 가야 할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즉흥적으로 진행되었다. 원래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를 먼저 가려 했지만, 궂은 날씨와 함께 “어차피 호텔 앞에 있어서 바로 갈 수 있으니 일단 패스한다”라는 핑계로 아야 소피아가 대망의 첫 방문지가 되었다.

이스탄불의 관광 물가는 관광객에게는 재앙이다 싶을 정도인데, 대부분의 관광지의 입장료가 성인 기준 3 ~ 5만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으며, 이스탄불 뮤지엄 패스의 가격은 거의 할인이 없는 묶음권 정도의 의미만 있는 수준이다. 때문에, 주요 명승지와 박물관 몇 군데만 들려도 세계 유명 테마파크 입장권과 맞먹는 수준의 금액이 지출된다.

결국 클룩 같은 서비스를 이용해서 각종 할인과 포인트, 이벤트 할인 등을 써가며 최대한 금액을 낮추는 것이 최선인 상황. 그래도 돌마바흐체 궁전 같은 곳은 최종 결제하기 전 까지도 여길 방문하는게 맞나? 같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아야 소피아는 원래 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모스크로 바뀌면서 관람객은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2층 구역만 관람할 수 있다. 때문에 전시 규모는 상당히 작으며, 소수의 유명 성화 모자이크나 모스크로 꾸며진 실내 장식을 제외하면 크게 볼 것이 없을 정도로 기대만큼 만족스럽진 못했다. 그나마 지독한 팬심(…) 덕분에 즐기고 왔을 정도.

아야 소피아에서는 의외의 즐거움이 있었는데, 바로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기나긴 출구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사람들에게 치사량의 눈빛을 쏘고 있던 고양이었다. 이스탄불은 정말 고양이와 개(특히 대형견)가 많았고, 정말 스스럼 없이 사람에게 다가오거나, 애교를 떠는 고양이들이 도시에 넘쳐나고 있다. 이후에 보니 고양이나 개들에게 사료를 주는 사람들이나 매장 앞에 먹이 그릇을 두고 있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아니 얘가 진짜 이러고 있었다고요

두번째 방문지인 톱카프 궁전의 미리 예매해 둔 표를 수령하기 위해 근처 카페로 향했는데, 여기서 부터 비흡연자의 고행이 시작되었다. 파리는 그래도 실내에서 흡연은 찾아보기 어려웠는데(그래도 길거리에서의 흡연은 상당했다), 튀르키예는 실내에서도 연초를 피우고 있고, 노약자나 어린이가 있더라도 거리낌 없이 흡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에 좀 당황했다. 비도 오고 추운 날씨에 카페 안에서 대기하려는 시도는 결국 무참히 실패했는데, 돌이켜보면 아마 이때부터 이스탄불에 대한 감상이 점차 부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

톱카프 궁전은 티켓 예매처 안내인을 따라, 기다림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크게 하렘 구역과 박물관 구역으로 나뉘었는데, 하렘 구역은 (퇴폐적일 것이라 알려진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궁전의 여성들과 미성년 자녀들이 교육을 받는 곳으로 일종의 거주 구역이다. 화려하다면 화려하지만, 특별한 전시 물품 없이 공간이 휑한 편이라서 크게 인상을 받진 못했다. 다만, 튀르키예식 전통 목욕탕인 하맘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사람들 상당히 깔끔하게 살고 있었구나 같은 생각.

하렘 구역을 나오면 바로 박물관 구역으로 나오는데, 주로 오스만 제국 시절의 황가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 중, 특히 이슬람 및 가톨릭의 성유물을 전시한 곳이 인상적이었는데, 선지자 무함마드와 관련된 유물(무장, 발자국, 망토 등) 뿐만 아니라, 세례자 요한의 팔 뼈 같은 “형이 왜 거기서 나와?” 급의 유물들도 있어서 놀랐다. 현지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단체 관람객이 많았는데, 그 중 한 현지 학생이 나를 보고 수줍은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라고 한국어 인삿말은 건낸 건 덤.

이게 왜 여기에? 싶었던 세례자 요한의 팔 뼈 성유물

톱카프 궁전을 나온 후, 카리예 박물관을 가기 전, 아이의 젖은 신발과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여정의 중간 쯤에 위치한 쇼핑 센터로 이동. 거기서 점심을 해결 한 이후 카리예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스탄불의 대중 교통은 교통카드 한 장으로 다수 인원의 결재가 가능했고, 1회 당 20 터키 리라 – 한화로 약 800원 정도로 저렴한 가격을 자랑했다(트램, 버스, 지하철 동일). 다만, 버스의 경우는 구글 지도가 제공하는 실시간 정보가 맞았던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매 번 20 ~ 30분 가까이 기다려야 했고, 트램과 지하철은 노선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동이 불편하다는 인상이었다. (애초에 택시는 해외까지 유명한 악명으로 인해 선택지에 포함이 안되어 있었고, 이스탄불의 우버 = 택시였기 때문에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카리예 박물관 근처의 버스 정류장은 콘스탄티노플 성벽과 맞닿은 곳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게임을 만들면서 삼중 성벽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내 곧 실망하고 말았는데 나름 세계 유산이니 만큼 관리 상태를 수원 화성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성벽은 여기저기 파괴되어 무너져 있는 상태였고, 뭐 하나 깔끔하게 보존되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미리 상태를 알고 방문을 했기 때문에 상태를 체크하자마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카리예 박물관으로 직행.

그나마 여기가 본 곳 중 성벽 상태가 가장 멀쩡했던 곳이다

카리예 박물관은 동로마 시대의 모자이크 성화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이 곳 역시 모스크로 사용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도착한 시간이 막 기도가 시작되고 있어서 관람객 입장이 막혀버렸고, 주변 카페에서 차이 티를 마시거나, 동네 고양이들을 남은 음식물로 유인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카리예 박물관의 모자이크는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작은 모스크(성당) 규모, 비싼 입장료, 주요 관광지와 동떨어진 위치, 모스크로 인한 출입 제한(기도 시간 출입 불가 및 여성들은 머플러 등으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등으로 인해 감상은 마냥 좋지 않았다. 카리예 박물관에서 예레바탄 사라이로 가기 위해 20분 가까이 버스를 기다려야만 했던 것은 덤. 하지만 모자이크를 본 것이 여기 방문 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줬다.

원래는 성당이었다가 모스크로 변하면서 모자이크를 가렸는데, 현대에 복구한 것이라 한다.

예레바탄 사라이는 동로마 시대 거대 지하 저수조로 화려한 조명 등을 설치해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관광지이다. 구글 지도에는 출구를 안내해 줘서 입구를 찾느라 좀 고생을 하긴 했지만, 다른 곳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공간감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

정확한 영화 명이 떠오르진 않지만 헐리우드 액션 첩보물에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날 저녁은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튀르키예 식사를 했는데, 평균적인 식사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의 음식을 먹어보면서 이스탄불에서의 외식에 대해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다음날 백종원의 튀르키예 음식 추천과도 얽혀 나름 최종 결론을 도출한다.

셋째날(25.01.16.) 탁심 광장, 갈라타 탑, 돌마바흐체 궁전, 테오도시우스 성벽

이 날 예보는 비는 그치고 흐림이었지만, 예보와 다르게 오후까지 비가 오고 있었다. 이 날은 금각만 너머에 있는 갈라타 탑과 돌마바흐체 궁전을 방문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이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페리를 이용해 보는 것으로 계획을 확정했다.

호텔에서 제공해 준 튀르키예 식 커피와 로쿰

숙소에서 출발 후, 트램을 타고 도착한 곳은 이스탄불 최초이자,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지하인 튀넬을 탑승하기 위해 카라쿄이로 이동.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역은 딱 2개 뿐이지만, 전차 자체는 현대식으로 깔끔한 편. 갈라타 탑까지는 상당히 높은 경사의 언덕길이었기 때문에 유용한 교통수단이 아닐 수 없다.

탑 앞에서 실크로드 우호협력 기념비 같은 의외의 것을 마주치고 수많은 고양이들을 지나쳐가면서 갈라타 탑에 입성했다. 원래 군사적인 용도로 감시탑의 역활을 하던 곳이니 만큼 이스탄불의 전경이 눈에 잘 들어오는 위치에 있었지만, 이 날은 날씨 때문에 그 유명한 경치를 제대로 관람할 수는 없었다는 것은 조금 아쉬울 따름이었다. 탑 내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번에 전망대를 관람한 이후 한층 한층 내려오면서 전시관을 보는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비잔틴 제국 시절 탑의 역사와 당시 군사 유물들을 전시해 두고 있다.

갈라타 탑을 나와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백종원의 배고파 이스탄불 편에서도 소개 되었던 퀴네페 맛집. 갈라타 탑에서 생각보다는 먼 거리에 위치 한 데다, 날씨는 계속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어서 한 정거장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을 탑승했다. 이스탄불의 지하철은 정말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기억으로는 에스컬레이터를 4 ~ 5회 정도 갈아타고 나서야 개찰구가 보였던 것 같다. 도시 전체가 유적인 이스탄불인지라 지하철 역시 깊게 깊게 팔 수 밖에 없었나? 같은 생각을 해본다.

백종원이 극찬한 퀴네페 맛집은 꽤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겨우 겨우 찾아간 곳에 손님은 우리를 포함 세 테이블, 게다가 모두가 한국인이었다는 점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백종원의 이스탄불 추천 맛집에 대해서 기대를 버리기 시작했는데,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종업원에게 일단 마이너스(백종원이 봤다면 크게 기함했을 거라 믿는다). 게다가 경험상 대부분 이스탄불의 음식점 중 평점 4점 이상인 곳은 어딜 가도 음식이 괜찮았기 때문에 굳이 고생 고생하면서 추천 맛집을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구글 평점 높고 저렴한 집이나, 마찬가지로 적당히 평점 높고 비싼 집이나 맛 차이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최종 결론.

여튼 퀴네페를 먹고 도보로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이동했다. 그 비싸디 비싼 입장료로 인해 갈까 말까 망설이던 바로 그곳.

돌마바흐체 궁전 입구

… 이었는데, 생각 외로 잘 꾸며진 정원, 베르사유를 레퍼런스 삼아 만들었다는 궁전 내부의 화려함, 미술관과 고양이로 인해 상당히 만족스럽게 구경을 마치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배편 시간을 맞추기 위해 관람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도중에 나와야 했던 게 아쉬울 정도로 생각 외로 많은 볼거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입장료를 내고 다시 방문하라고 하면 또 한 번 주저할 것 같긴 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페리는 교통카드로 탑승이 가능한 구간이 별도로 있으며, 금액은 다른 대중교통과 다르게 구간 별로 차등으로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저렴한 편으로, 다음날 방문했던 가장 장거리(약 1시간 소요)인 프린스 아일랜드도 1인당 80 튀르키예 리라(한화 약 3,500원 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행 피로를 호소하는 일행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인원은 어제 지나쳐 갔던 콘스탄티노플 3중 성벽을 보기 위해 여정을 떠났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트램을 타고, 30분을 걸려 도착했던 성벽은 어제 갔던 곳과 완전히 반대편에 있었지만 상태는 마찬가지로 처참한 상태. 근처에 일부 복원을 한 박물관이 운영 중인 것 같았지만, 비싼 입장료 대비 그다지 볼거리가 없단 리뷰를 봤었기 때문에 애초에 방문 계획 자체가 없었다(어차피 도착 시간이 폐장 시간이 다 되기도 했다).

옛 제국의 영광 따위 지금은 폐허와 밭으로…

저녁은 숙소에서 해결하기 위해 미리 검색해 둔 근처의 대형 쇼핑몰로 향했다. 여기서 카이막, 꿀, 소시지, 로쿰 등을 구매하였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첫째를 위해 조그마한 봉지의 고양이 사료도 하나 챙겼다. 전체적인 소비자 물가는 한국과 동일했고, 때문에 이스탄불이 절대 저렴한 맛에 관광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넷째날(25.01.17.) 므스르 차슈르, 그랜드 바자르, 프린스 아일랜드, 카디쿄이

도착 직후부터 계속 우중충하고 비바람이 불던 날씨는 이날을 기점으로 점차 맑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날 부터의 일정은 거의 정해진 것이 없었는데, 전날 대충 짠 계획으로는 이집트 바자르로 잘 알려진 므스르 차슈르와, 거의 비슷한 재래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를 구경하고, 배 시간에 맞춰 프린스 아일랜드라는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관광지(섬)로 가기로 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와 일출

므스르 차슈르와 그랜드 바자르는 그다지 좋은 인상이 남지 않았는데, 어린 시절 용산전자상가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호객 행위도 불쾌한데, 거기에 더해 “니하오, 곤니찌와, 안녕하세요.”를 남발하는 상인 인파를 지나쳐 가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그나마 므스르 차슈르는 꽤 현대화 된 실내에 시장 분위기가 깔끔하기라도 했는데, 그랜드 바자르는 이 와중에 실내 흡연까지 판치고 있다 보니 100% 비흡연자로 구성되어 있던 우리 일행은 관광 자체가 고역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아직 배 시간이 되지도 않았지만 빠르게 그랜드 바자르를 빠져나왔다.

프린스 아일랜드는 비잔틴 제국 당시의 황태자가 유배를 간 곳으로 유명하다고 하며, 외국인 관광객들 보다는 현지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날이 쌀쌀하고 한겨울이다 보니 섬은 한산한 편이었고, 도시와는 다른 보통의 휴양지와 같은 느낌의 섬이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우리나라의 오이도나 대부도 같은?

섬이라서 본토처럼 고양이나 개는 없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 곳 역시 고양이의 천국이자 개들의 낙원이었고, 전날 샀던 사료는 그 역활을 톡톡히 해내었다. 그렇게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야 숙소로 돌아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여러 방안을 생각해 내다 가장 빠른 출발편인 카디쿄이 행 배를 서둘러 잡아 탔다.

사료의 효과는 굉장했다

카디쿄이는 이스탄불의 아시아 지역으로 원래는 방문 계획에 있지 않던 곳이었다. 사실상 겸사겸사였지만,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넘나들었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녀 보았다. 근처에 튀르키예 아이스크림인 돈두르마를 파는 곳을 찾아가 돈두르마를 먹었는데, 카페 식으로 되어 있는 매장에는 카공족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 역시 흡연으로 인해 고생하였는데, 때문에 바로 아이스크림만 먹고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카디쿄이에서 숙소 근처 선착장인 에미뇌뉘로 가는 배편은 수시로 있었고, 아름답다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일몰 시간 30분 전 즈음에 맞춰 페리에 탑승했다. 이 때 날씨는 완전히 화창해져서 아름다운 경관을 배 위에서 정말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의 일몰

다섯째날(25.01.18.)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보스포루스 해협 산책길, 그리고 귀국

이 날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귀국일로, 공항으로 출발하는 샌딩 서비스는 오후 1시 경에 예약 되어 있었다. 아침에 바로 체크 아웃을 하고 짐을 호텔에 맡긴 후, 이스탄불 여행 첫째날 부터 미뤄두고 있었던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를 방문했다.

이스탄불에서 방문한 여러 유명 관광지 중 유일하게 입장료가 무료였던 이곳은 아침 일찍 부터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당시 성당이었던 아야 소피아와 경쟁하듯 지어졌다는 이 모스크는 규모도 크고 상당히 화려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실내

술탄 아스메트 모스크를 나와서 톱카피 궁전 옆의 해안 도로로 산책을 시작했는데, 거의 차만 다니는 한적한 도로임에도 토요일 주말이라 그런지 해안을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이나 우리처럼 산책을 하는 사람들과 종종 마주쳤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작은 낚시 배들이 바다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가 대형 유조선이 오자 성급히 자리를 피해주는 장면이 나름 인상에 남기도 했다.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는 낚시배들

산책을 마치고 튀르키예의 유명 디저트 채인인 하피즈 무스타파에서 디저트를 먹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스탄불에서의 일정도 마무리 되었다.

2025년 이스탄불 여행 인상

이스탄불 여행은 일생의 소원 중 하나였지만, 체감 상 파리보다도 더 높은 물가와 특히 각종 관광지의 혀를 내두를 만한 입장료로 인해 시작부터 약간 떨떠름한 상태였던 것은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대중교통의 불편함, 비흡연자에게 고통스러운 흡연 문화는 도시의 인상을 망쳐 놓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탄불의 유적과 관광지는 인상에 강렬하게 남을 만큼 평소라면 접해보지 못할 감각을 내게 선사해주고 있었다. 기묘하면서도 낯설지만, 그럼에도 친숙한 느낌이 도시 전반에 깔려 있는데, 이전에 그런 감각을 느껴 본 적은 살면서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스탄불을 또 갈 일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만약 간다면 아마 아래와 같이 일정을 개선하지 않을까 싶다.

  • 이스탄불의 일정은 좀 더 줄이고 다른 지방이나 도시를 방문하는 계획을 추가할 것 같다.
  • 일행이 있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보다는 차라리 투어 상품을 구매해서 갈 것 이다.
  • 백종원 추천은 장소 보다는 무엇을 먹었는지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춰, 체력과 시간을 아낄 것이다.